저축무용론

한정된 재화를 가장 만족스럽게 쓰는 방법은 그때그때 쓰고 싶은 대로 써버리는 것이다.
합리와 효율을 따지면 가난이 현실이 되어버린다.
미래 같은 거, 어차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사랑은 맘내켰을 때 하는 게 좋다.
아껴봐야 똥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 따위 소용없다.
그랬어도 그러지 않았어도 사랑은 끝난다.

돈도 사랑도 잠시 계좌를 스쳐갈 뿐.
배부른 건 카드사와 유행가 제작사다.
화폐와 대상이라는 형상 때문에 돈도 사랑도 존재한다 믿기 쉽지만,
그 둘 모두 그저 개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신이 있든 없든 믿는 것이 경제적이다-
있다면 내세가 편할 것이고 없더라도 현세에 올바르게 살 수 있다-는 파스칼의 말대로.
뭐 이런 걸 논증이라 하기도 뭣하지만..
어쨌든 그 둘은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더라도 착각해서 나쁠 건 없다.
다만 신의 존재 여부는 죽어봐야 아는 거고,
돈은 카드 결제일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사랑 역시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원래 없던 것을 있다고 오해했을 뿐이므로
부재를 슬퍼할 일도 아니다.

결론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땐 얼른 누려야 한다는 것.
아끼고 모아봐야 쌓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외롭다 외롭다 하면서도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는다
행복하고 싶다 하면서도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실은, 외롭지 않은 거 아닐까.
이대로 괜찮은 거 아닐까.

살 빼야지, 담배 끊어야지, 술 줄여야지, 돈 모아야지...
결코 하지 않을 줄 알면서 그냥 추임새처럼 하는 말들일지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어쩌고 싶지 않은 걸지도.

ㅇㅇ

마음을 정리해서 메일을 보냈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당신은 글쓰지 말고 편집이나 하란다.
맞는 말이다.
나는 사투리가 심하다.


엄마 생각

명절 동안 해먹은 것.
만두, 잡채, 전.
아무데도 안 가고 사흘 내리 집에서 지지고 볶고
시키지도 않은 노동을 했다.

엄마는 늘 너무 많은 음식을 너무 자주 해댔다.
엄마에게 그것은 의무이고 책임이고, 한편 기쁨이고 존재 이유였다.
보답 없는 노동. 보답 없는 마음.

그리고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엄마는 영수증도 모아놓지 않고는, 지불 청구를 하고 있다.
그동안 해먹인 밥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 뱃속에서 모두 소화되었는데.
엄마는 사용가치가 존재가치가 아니었음을 이제사 증명하고 싶은 거다.
밥이 아니어도 사랑 받고 싶은 게 큰 요구는 아닐 텐데.
엄마는 그 요구로 베트남에서 위엄을 잃었고, 여전히 밥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선지, 가끔 거울을 보다 엄마를 발견한다.
엄마는 늙으면서 점점 외할머니를 닮아간다.
86년의 밥, 67년의 밥, 37년의 밥.
그녀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는데..
나는 진화하지 못한 여자 인간.
내 피의 DNA가 설에는 역시 만두지, 라 외친다.
냉동실에는 맛도 없고 언제 먹을지도 모를 만두가 꽁꽁 얼어 있다.

연휴 끝

여자 말고 인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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